한국에 아이스하키가 처음으로 선보인 것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였던 1928년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1월 전조선빙상경기 대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같은 해 11월 조선빙구연맹이 창설됐다. 해방 직후인 1947년 최선익(작고) 회장을 초대 수장으로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출범했고 지난 1월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제 22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역사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지만 세계화에 나선 지는 오래되지 않는다. 1960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에 가입했지만 국제무대에 첫 선을 보이기까지는 그로부터 19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했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1979년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79 IIHF 세계선수권 C풀 대회에서 국제 무대 데뷔전을 치른다.

홈 팀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1-7로 완패할 때만 해도 혹독한 신고식이 예상됐지만 2차전에서 영국을 9-6으로 꺾으며 국제 무대 첫 승전보의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와의 3차전에서 0-18, 이탈리아와의 4차전에서 0-11로 대패하며 ‘세계의 높은 장벽’을 실감했다. 5차전에서 호주와 득점 없이 비겼지만 6차전에서 프랑스에 3-15로 대패했고 7차저에서 불가리아에 3-10으로 지며 1승 1무 5패, 참가 8개국 가운데 7위로 대회를 마쳤다.

한국이 두번째로 밟은 세계선수권 대회는 1982년 스페인 하카에서 열린 C풀 대회. 앞서 1980년은 동계 올림픽 개최 탓에 세계선수권이 열리지 않았고 1981년에는 동계 유니버시아드 출전 탓에 중국에서 열린 탓에 세계선수권 C풀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두번째로 나선 1982년 세계선수권은 데뷔 무대보다 혹독했다.
길회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7경기에서 모두 127골을 내주며 모조리 패배하는 수모를 당한다. 한국은 모든 상대국들에 두자릿 수 골을 허용했고 특히 일본과의 국제 대회 첫 맞대결에서 0-25로 참패하며 현격한 수준 차를 절감해야 했다.

국내 저변 확대와 대중화가 좀처럼 이뤄지지 못한 탓에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1980년대와 한국 아이스하키의 현실이다. 실업팀 하나 없던 탓에 선수들은 한창 경기력이 무르익을 때 군에 입대하거나 생계를 위해 스틱을 놔야했다. 세계선수권에서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음은 물론 아시아권에서도 일본, 중국, 북한에 일방적인 열세를 보였다.

1990년대 들어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내에 실업팀이 잇달아 창단됐지만 세계의 수준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트시티 동계 올림픽 예선전 결과는 당시 한국 아이스하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회다.

나가노 올림픽 지역 예선을 겸해 1996년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카자흐스탄에 1-9, 일본에 1-6, 중국에 2-4로 차례로 패하며 4개 참가국 가운데 4위에 머물렀다. 솔트레이트 올림픽 지역 예선을 겸해 1999년 9월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제 5회 아시안컵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0-9로 완패했고 중국에도 2-4로 졌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2003년 한국과 일본, 중국의 연합리그인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의 출범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한 수 위의 일본 팀, 외국인 선수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경험은 이후 한국 아이스하키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달라진 한국 아이스하키의 면모가 처음으로 확인된 무대는 2006년 중국 창춘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 한국은 비록 0-3으로 지기는 했지만 일본을 맞아 투지 넘치는 경기를 펼쳤고 중국을 5-3으로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것은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분리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계선수권에서의 약진은 2009년 시작됐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2009 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2 B그룹 대회에서 5전 전승으로 우승, 디비전 1로 승격한 한국은 2010년 슬로베니아 루블라냐에서 열린 디비전 1 B그룹 대회에서 최종전에서 크로아티아를 꺾고 사상 처음으로 디비전 1 잔류에 성공했다.

이어 201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디비전 1 A그룹 대회에서는 1승 1연장패 2패(승점 4)로 3위를 차지, 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디비전 내 그룹이 실력에 따라 재편성돼 열린 2012년 디비전 1 B그룹 대회(폴란드 크리니카) 최종전에서는 홈 팀 폴란드에 3-2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 디비전 1 A그룹으로 승격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어 2013년 4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디비전 1 A그룹 대회에서는 홈 팀 헝가리에 5-4 대역전승을 거두고 최종전에서 영국을 4-1로 완파하며 참가 6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 그룹 잔류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2014년 안방에서 시련을 맞았다. 4월 고양 어울림누리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디비전 1 그룹 A 대회에서 헝가리,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일본, 우크라이나에 차례로 패배하며 승점을 올리지 못한 채 최하위에 머물러 디비전 1 그룹 A로 강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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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 본선행 확정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각오로 대회에 임한 한국 아이스하키는 뜻 밖의 부진한 성적에 그쳤지만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을 서둘렀고 같은 해 8월 한국계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무대를 누볐고 91년과 92년 피츠버그 펭귄스 소속으로 두 차례나 스탠리컵을 품에 안은 백지선 감독을 한국 아이스하키 체질 개선을 이끌 수장으로 임명, 평창 올림픽 본선행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냈다.

평창 올림픽 본선행을 목표로 한 한국 아이스하키의 쉼 없는 노력은 결국 IIHF 수뇌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IIHF는 9월 스페인 테네리페에서 열린 2014 준연차 총회(Semi Annual Congress)에서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2018 평창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부여하기로 의결했다.

지상 목표였던 평창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손에 쥔 한국 아이스하키는 10월 NHL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박용수 코치를 대표팀 프로그램 어시스턴트 디렉터로, NCAA 명문 미네소타 덜러스대 출신의 새러 머리 코치를 여자 대표팀 전담 지도자로 선임, 평창 올림픽을 목표로 한 전력 강화를 이끌 코칭스태프 선임을 마무리했고, 1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4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에서 강호 이탈리아와 폴란드를 꺾고 준우승을 차지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남자 대표팀은 2015년 4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B 대회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디비전 1 그룹 A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대표팀은 3차전에서 복병 영국에게 2-3으로 졌지만 리투아니아가 최종일 경기에서 영국을 3-2로 제압, 승자승 원칙에 따라 영국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남자 대표팀은 2016년 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016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에서 사상 처음으로 톱 디비전 소속의 강팀과 경기를 치렀다. 2015년 IIHF 랭킹 11위의 노르웨이에 1-3, 15위 덴마크에 0-2로 지기는 했지만 시종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세계의 벽’에 근접했음을 확인시켰다.